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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 그들은 너무도 사랑했다
글. 신양희 큐레이터
우리 시대는 왕이나 귀족이 통치하던 시대와 달리 국가가 인민을 통치한다. 물론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쓴 국가는 자신의 주권이 인민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집합체로서, 국가는 인민의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상 이는 그릇된 진술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인민의 것이 아니라 계급적대적인 상황을 봉합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레닌에 따르면 “국가는 계급들의 화해 불가능성의 산물이자 표현이다. 국가는 계급대립들이 객관적으로 화해될 수 없는 곳에서, 객관적으로 화해될 수 없을 때에, 객관적으로 화해될 수 없는 한에서 생겨난다. 바꿔 말하면, 국가의 출현은 계급대립들이 화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국가와 혁명』, 레닌, 16p)이었다. 레닌이진술한것처럼국가의출현은계급간대립을 억제할 필요에서 생겨났고 동시에 계급 간 충돌 속에서 생겨났으므로,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계급의 것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국가는 결국 정치경제를 지배한 자들의 것이자 그들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한다. 따라서 아무리 국가가 민주주의를 걸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질서와 체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인정하는 국가, 즉 한 계급이 다른계급에대해,주민의일부가다른일부에대해 체계적 폭력을 사용하기 위한 조직(『국가와 혁명』, 레닌, 139p)”이라는 레닌의 진술은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민주주의 또한 국가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도구가될때,민주주의의진정한정신을내포할 수없다.현재의국가는표면적으로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보유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떠받드는 권력 기구로서 자본과 한몸이 되어 인민을 통치한다.
이처럼 국가가 자본의 운동을 견인할 때, 인민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인민에 대한 전제는 깔려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예술가들이 마주한 인민의 모습을 미술의 언어로 드러낸다. 먼저 참여작가 서평주, 이우성, 홍진훤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만났거나 관찰했던 인민을 추적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영상으로 담아낸다. 또한 이 전시에서는 신학철의 198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아카이브 형태의 전시를 병행한다.
신학철은 1980년대 이후 자신의 조형언어와 사회정치적 입장을 완전히 바꾸었으며, 이제 일군에서는 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 신학철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빌려 80년대 민중미술을 복원하거나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수탈당하고 수난당한 인민에서부터 역사적 주체, 소시민으로서의 인민 등 자신이 마주한 인민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했고, 이 전시에서는 그의 작업과 인민에 대한 현재적인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한편으로 서평주, 이우성, 홍진훤 작가의 기존 작업이 인민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재현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서평주가 한국근현대사를 통해 관철되었던 국가의 폭력과 권력을 비판적 읽어내고자 했다면, 홍진훤은 자본과 권력의 힘에 밀려나간 사람들에 관심을 두면서 그들이 사라진, 부재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들과 달리 이우성의 작업은 자신의 삶과 자신 주변의 이야기에초점을둔좀더개인적인서사를재현하고 있다. 이들 작업의 방향은 다르지만 이 전시에서는 인민이라는 주제어를 바탕으로 모종의 공통된 지점을찾고자한다.
이 전시는 세명의 젊은 작가 서평주,이우성, 홍진훤의 작품과 작품과 신학철 작가의 작업을 통해 인민을 마주하려는 예술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며,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는 인민을 현재화하고자 한다.
〈추적자; 그들은 너무도 사랑했다〉 작품소개
서평주
한국의 근현대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서평주는 이를 여러 매체로 드러내는 작업을 주로 한다. 그의 비판이 향하는 곳은 국가를 통치하는 자들이거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며, 작가는 이들을 향해 ‘똑바로 살아라’라는 일침을 가한다. 자본과 권력 이면에 작동하는 모종의 원리를 헤집으면서 나름의 주장과 서사를 만들고자 하는 그의 작품에서 피지배계급의 결여나 박탈감이 엿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것들은 어떤 풍자나 위트를 통해 상쇄되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두 명의 인물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두 가지 영상을 상영한다. 여기서 작가는 누군가의 말을 듣는 자를 자처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주장을 전유해낸다. 〈꽃병〉의 내레이터는 1970년 후반과 1980년 광주학살 시기 학생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무력 투쟁이 사라진 자리에서 작가는 꽃병에 함축된 의미를 통해서 현재 순화되어 버린 운동에 대한 고민을 끌어낸다. 이 작품과 함께 상영되는 〈우리, 인민〉은 한 활동가와의 인터뷰가 바탕이 된 것으로 작가는 그에게서 여러 정치사회적 사안뿐만 아니라 인민이라는 존재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그 응답으로 구성된 한 편의 영상과 인터뷰집에는 인터뷰어의 진술과 작가의 의도가 간접적으로 교차한다. 운동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작가는 이들의 입을 통해 한국현대사의 모순을 계급적으로 인식하고자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