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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October)>

​신양희 큐레이터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으로 시작된 광장의 촛불은 그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렸을 뿐만 아니라 ‘적폐청산’이라는 국민적 의지를 만들었다. 국민이 촛불을 들고 정치세력을 앞질렀던 것은 지성과 이성, 합리와 상식으로 지배계급에 맞서기 위함이었다. “정치세력 일반과 국민 사이의 권력 다툼”을 드러냈던   광장의 촛불은 제19대 대통령선거를 조기에 치르는 성과를 이뤘으며, 권력을 이양받은 정치세력이 ‘적폐청산’의 과제를 실현할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물론 촛불의 뜻대로 적폐청산의 과제가 온전히 실현될 것인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100년 전인 1917년 러시아에서는 피지배계급의 봉기와, 이를 이끈 볼셰비키의 협력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을 거두었다. 1917년4월의 테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이 현실화되었고, 제정러시아는 붕괴하고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실현된 것이다. 러시아혁명은 이전의 세계사적 혁명과 연결되는 지점이 존재하지만, 피지배계급과 볼셰비키가 혁명을 통해 국가와 정치를 획득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실현하고자 했던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의의는 분명 특별하다.  

 

혁명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어떤 체제로 인민들과 함께 나아갔는지는, 한국사회에서는 부정적이고 왜곡된 것으로 남아 있다. 냉전 이후 세계가 미소 양 진영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대립 상황에서 남한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사회주의 체제의 이념은 분명 인민을 위한 세계를 지향한 것이었다. 물론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공산주의가 이념에서 현실로 내려왔을 때, 그 둘이 정확히 일치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양하는 과정이자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대안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이상적인 사회라 일컫는 복지국가도 이론상으로는 공산주의가 아니라도 상상할 수 있지만, 그것이 현실화되는 데에 소련이 큰 영향력을 미쳤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이후,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의 현실 사회주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내부적인 폭동이나 외부적 요인이라 부를 것이 없을 만큼 아주 조용히 연방은 해체했다. 이러한 사라짐을 사회주의의 실패라 규정하면 끝나는 것일까.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은 없을까. 현재 존재하는 체제만을 절대화하는 것은 어리석다. 사회주의 혁명과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실험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부터 분명 다른 체제와 시스템을 상상할 수 있다.   

 

올해 2017년은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100년, 200주년처럼 수적인 것으로 의미화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여전히 우리 현실과 무관하지 않고, 또한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면, 그 역사적 사건을 현재화하는 작업은 의미 있다. 왜냐하면 러시아혁명은 러시아에서 발생한 특수한 사건으로 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혁명은 피지배계급이 정치를 소유한 것이자 국가를 자신들의 것으로 획득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혁명은 인간 삶의 물적 조건과 시스템, 그 내부를 살아가는 인민들의 삶을 다른 것으로 만들어낸 기획이자 그 실현이었다. 따라서 러시아혁명을 현재화하는 작업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어떤 사회가 온당한지를 이론적으로,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사유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옥토버(October)>는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1917년 10월을 가리키며 붙여진 제목이다. 소련의 해체로 사회주의는 이제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혁명의 성과와 그 정신이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전시에서는 그러한 혁명의 정신을 되새기며, 현 체제를 넘어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전시는 크게 두 개의 층위로 구성될 예정이지만, 아르코미술관 2층에서 전시될 이 두 섹션은 정확히 분리되어 배치되지는 않을 것이며,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형태를 취할 것이다. 먼저 한 섹션은 러시아혁명과 그것을 이끌었던 주체들과 연관된 시각적 생산물, 미술담론, 정치담론에 대한 현재적인 관심을 반영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다른 한 섹션은 러시아혁명의 주체이기도 했던 인민의 모습을 우리 현실로 당겨오는 작업이다. 더 나은 사회와 체제를 열망하고 희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진보를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지, 이를 한국의 현실과 우리 인민의 모습으로부터 조형화하고자 한다. 

 

이처럼 이 전시에서 드러나는 상이한 두 시공간의 충돌은 사실상 더 나은 체제를 희망했던/희망한다는 것의 의의를 가시화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혁명에 대한 현재의 관심을 과거로부터 끌어내고, 더 나은 세계로 힘을 뻗고자 하는 우리 인민의 잠재성을 끌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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